▲사투 끝에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송경태 전주시의원(사진 가운데).
송경태씨의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완주기
"오늘은 악마의 발톱이 얼마나 살 도려낼지"
"힘든 고통, 어려움 많을 수록 성취감 크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04-07 16:42:39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5일까지 칠레 아타카마사막에서 열린'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대회'에 참가, 완주한 송경태 전주시의원(47세, 시각장애1급,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이 험난한 여정을 소회한 글을 보내왔다.
또 눈을 떴다. 어디가 어딘지 아직 모르겠다. 아직 사막에 있어야 하는데, 숨도 안차다. 덥지도 않다. 목도 안 마르다. 흙먼지도 없다. 옆에 있어야 할 막내아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어디일까?
한참을 생각 후에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렇다. 이제 나는 안전한 땅, 축복의 땅, 물이 있는 곳, 생명의 풀이 있는 곳, 안전한 길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이다. 마냥 행복하다. 아아!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괜히 소금사막을 왔나보다
며칠 전 까지 나는 사막에 있었다. 서바이벌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Km를 도전하고 있었다. 누군가 시켜서 왔다면 백번도 더 포기를 했을 것이다. 뭔가를 생각하겠다고 의미를 두면서 참가했지만 내 머릿속은 조금만 달려도 숨통이 헉헉 막히는 고산증과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악마의 발톱이 금방이라도 발목을 집어삼킬 듯한 소금 길과 쇠 조각 같은 돌덩이, 금방이라도 살을 녹일 것 같은 뜨거운 모래를 느끼면 생각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괜히 소금사막을 왔나보다. 악마의 발톱과 상어의 이빨로 변한 소금 길은 내 발바닥을 꿰뚫고 내 발목을 집어삼킬 태세다. 음성온도계를 쳐다본다. 차라리 모르면 더욱 좋았을 것을! 온도는 섭씨 45도를 가리켰다. 이런 곳을 한걸음 한걸음 전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안내한 막내아들과 머리 깊숙이 새겨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이미지도 에너지가 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신발을 금방이라도 뚫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소금기둥과 바위조각들, 그리고 숨을 곳 하나, 그늘 하나 없는 아타카마사막을 안내하는 막내아들과 가족을 떠올리니 눈물은 어찌 그리 펑펑 흐르던지. 옆에 있는 막내녀석이 모르도록 소리를 죽이고 머리로 마음으로 내내 눈물이 나왔다.
사막에서의 눈물은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몸 전체를 시원하게 하는 작용을 해주었다. 모래바람이 들어가지 말라고 만들어진 고글은 나의 눈물을 가두어서 습기를 만들었다. 가끔 고글을 들면 '주루룩'하고 덩어리 눈물이 쏟아 진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 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그 동안 조금이나 잘못 살았던 삶을 반성해 본다. 특별한 것이 아니고 평범한 것이었다. 가족들 부모님, 친구와 지인들 등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면 잘 해주어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멍한 순간이다. 막내아들 배낭과 내 손목에 매어 있던 1m 짜리 생명줄이 갑자기 당겨 진다. 헉! 쓰러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딱 10분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엉덩이가 너무 뜨겁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용수철처럼 하늘로 튀어 오른다.
또한 지옥의 코스였던 롱데이 첫 관문인 소금기둥 길은 가는 내내 '내 몸에 숨통이 왜 존재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입 속에서 나오는 열기가 고철덩이마저 녹여버릴 기세다. 송곳보다 뾰쪽하고 톱니보다 날카로운 소금기둥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곤두서고 발목이 후들거려 숨통이 터질 지경이다.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
제한시간은 목전인데 "포기냐? 강행이냐?" 현기증이 돈다. 순간 나를 인도하는 막내녀석 생각이 혼미한 뇌리를 스친다. '아빠! 아빠! 힘내!'하는 소리가 고막을 강하게 때린다. 정신이 든다. 재빨리 배낭을 벗고 귀중한 생명수를 꺼내어 여기 저기 부어 적신다. '아! 뜨겁다' 몇 초 지나야 뜨거움이 시원함으로 바뀐다. 커피를 그냥 넣어서 흔들면 바로 마실 수 있고, 컵라면을 그냥 넣어 먹을 수 있는 온도로 물이 태양에 데워져 있었다.
최대한 줄이고 줄인 일주일치 식량과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배낭의 무게는 자그마치 16.5kg이다. 어깨는 이미 피멍이 들어 쓰리다. 필생즉사요, 필사즉생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생각났다. 살기 위해 귀한 식량 3분의 1을 눈물을 흘리며 과감히 버렸다. 새털처럼 가벼웠다.
신발 속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한증막이다. 발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종아리도 뜨거운 모래와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날카로운 소금기둥과 자갈에 노출되어 엉망이다. 꼭 어릴 때 할머니가 챙겨 주던 광주리의 홍시감처럼 변했다. 나의 발은 물론 막내녀석 발도 물렁거리는 순서대로 터지고 있었다. 구멍 난 자전거 튜브처럼 여기저기 실로 꿰매고 밴드로 땜질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달의 계곡을 통과할 무렵부터 막내녀석 왼쪽무릎에 탈이 났다. 내가 잡은 생명줄 하중이 막내녀석 왼발을 가혹하게 한 것이다. 60°경사의 모래언덕을 절룩거리며 올라가는 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상상하니 내 속이 타들어 가고 살을 도려내는 전율이 갑자기 몰아닥친 칼바람과 섞여 한기를 느꼈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둡다.
앞으로 23km를 더 가야 비박을 할 수 있는 CP인데. 절룩거리며 한발한발 내딛는 막내녀석을 부축하며 애처롭게 가야하는 이유는 뭘까? 유난히 추위를 타는 막내녀석이 갑자기 춥다고 외친다. 배도 고프다 한다. 배낭서 침낭을 꺼내 막내아들 몸에 뒤집어씌우고 굶주린 배는 물로 채우며 가야했다.
이렇게까지 되면서 가는 의미가 무엇일까? 과연 마지막 날까지 버틸 수 있을까?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가 생각난다.
하루하루 두려움의 연속
새벽이 두렵다. 오늘도 얼마의 고문을 나 자신과 막내아들에게 시켜야 될지? 오늘은 악마의 발톱이 얼마나 살을 도려낼지? 태양이 얼마나 나를 말릴지? 밤에는 지축을 뒤흔드는 강풍이 얼마나 잠을 설치게 할지? 아무튼 확실한 건 이것들은 나의 힘과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극한상황이다. 더듬거리며 아침밥을 입에 억지로 밀어 넣고 눈치 봐 가며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그 날 필요한 식량 및 장비를 점검하고 복장착용하기도 왜 그리 바쁜지? 나는 삶에서 누구를 광명의 세계로 인도하였는가? 누가 바른 길로 가도록 고무시켰는가? 나로 인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본다.
오늘도 최소한 2000kcal 이상의 영양이 공급돼야한다. 그러나 둘째날 식량을 버린 탓에 허기를 생명수로 채우며 배고픔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막내녀석은 배고프단 말도 이젠 지쳤는지 하지 않았다. 내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는데 막내녀석이 배고프단 말을 할 때는 왜 그리 속이 저며오는지. 괜히 데려왔나 보다. 아내는 "아들 잡지 말고 혼자 다녀 오라"고 했다.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된다.
많은 갈등과 아픔과 희열 속에서 피오줌이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고 위로해 본다. 밤 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이 선명하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내 처녀시집이 기다리고 있을 그곳으로….
'오늘이 끝'이라는 생각이 고통 없애
6일째 되는 날이다.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끝'이라는 생각은 이미 육체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이내 가장 건조한 사막, 소금사막을 두발로 넘어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돈다. 이제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죽음의 문턱이 삶과 바로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으로 안아주는 여유도 배웠다. 푸른 들과 산을 가진 조국에게 감사한다. 다시 새로운 삶, 더 정직한 삶, 더 친절한 삶, 더 성실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
힘든 고통과 어려움이 많을 수록 완주후의 성취감이나 도전하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빠를 안내해준 막내아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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